본문 바로가기
땡초 monk/♡갖고싶은 야생화

복수초

by 땡초 monk 2007. 6. 8.

 

복수초

 

 

 

양지 말에 살던 누나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태양을 닮은 둥근 얼굴과 얼음처럼 하얀 살결을 갖고 있던 소녀... 오늘처럼 쌀쌀한 겨울의 끝자락 하교 길이었다. 털장갑을 내밀며 '손이 많이 텄구나' 했고, 목도리를 걸어주며 '목이 허전하겠네' 했다.

 

그러나 단발머리에서 풍겨나던 꽃 내움만 알았지, 그 소리가 무슨 뜻인 줄 몰랐다. 눈처럼 사라져간 풋풋한 향기, 누나는 복수초(福壽草)를 좋아했다. 죽으면 샛노란 복수 꽃이 되고자 했다.

 

 

<봄의 전령사, 봄을 일으켜세우는 샛노란 복수초>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면 밤마다 복수 꽃 피어나는 소리 듣는다. 별과 달 사이를 스쳐 오는 복수 꽃 버는 소리, 환상의 겨울 숲을 건너오는 복수 꽃 선율.

 

산기슭에 눈과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복수 꽃은 피어난다. 얼음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 <얼음새 꽃>, 설 즈음에 핀다하여 원일초(元日草), 연꽃을 닮아 설연화(雪蓮花)라 부른다. 갈색 대지 위에 샛노란 얼굴을 내밀고 태양을 기다린다. 누나가 좋아하던 꽃, 눈 속을 헤집고 애잔하게 피어나는 복수 꽃, 태양이 솟아나면 가슴 무너져 울지도 못한다. 입술만 벙긋 웃지도 못한다.

 

 

설날부터 복수꽃이 보고 싶어 안달을 했다. 북한강엔 복수꽃 보기가 힘들다. 더구나 올 겨울처럼 겨우내 눈이 오지 않아 날씨가 건조하면 더욱 그렇다. 어디 가서 복수초 구경을 한담.

 

 

지난 주말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던 날, 춘천댐 근방 자생식물원에서 기쁜 소식이 왔다. 복수초가 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꽃이 보여요?"
"필 것 같아."
"같다니?"
"땅에서 열이나."
"열?"
"신열을 앓고 있어, 열이 나야 눈과 얼음을 녹여내지."

 

기쁜 마음에 눈 속을 뚫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눈 속을 헤집고 식물원에 도착했으나 복수꽃은 눈을 감고 있었다.
 
"얘들이 왜 이럴까?"
"날씨가 흐리고 눈이 와서 그래."
이제나저제나 눈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허탕이었다.

 

 

다음날 아침엔 해가 맑았다. 단숨에 식물원으로 달려갔다. 신통하게도 벌써 샛노란 입술을 열고 꽃 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도 귀엽고 앙증맞아 한 번 만져보려 가까이 다가서자 이내 입술을 다물어버렸다. 사람이 깨끗지 못하니 손이라도 타는가. 햇빛에 가려 그늘이 져서 그렇다 했다. 꽃잎을 벌려놓으면 이내 입술을 다물곤 했다. 복수꽃은 오직 태양만 좋아라 했다.

 

 

<정지된 시간을 돌려세우며 봄을 이고 나오는 복수초>

 

 

복수꽃을 짝사랑하는 동물이 있다. 두더지란다. 아주 오랜 옛날 아름다운 젊은 여신 <크노맨> 공주는 태양만을 사랑했단다. 그러나 공주 아버님은 땅 부자인 두더지와 결혼을 시키려고 갖은 수를 다 썼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거야. 화간 난 아버지는 딸에게 벌을 내리려 하자, 춥고 어두운 겨울 밤 도망을 치다 죽어 복수꽃이 되었다는데....


그래서일까. 오늘도 복수꽃 주변엔 두더지 발자욱이 나란하다. 불쌍하고 가여운 두더지 생각을 떠올리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봄의 전령사 복수초, 노란 꽃술이 터질 때마다 온 몸에 신열이 나 눈과 얼음을 녹여낸다. 정지된 침묵 속 시간을 되돌려내고, 땅을 흔들어 깨우며 봄을 이고 나온다.

 

 

<봄을 재촉하는 돌채송화와 일엽란>

 

누나를 닮은 꽃, 영원한 행복과 부귀와 장수를 가져다 준다는 복수초, 올해엔 더 많은 행운을 달라 해본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행복을 바라기 앞서, 치열하게 사랑하고 인내하며 말없이 자신을 뜨겁게 달궈내는 복수초를 닮아야겠다고....

 

<봄을 재촉하는 석창포>

 

  겨울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가슴에 묻어나는 복 수꽃 내움, 따사로운 봄볕에 가슴을 벌려 본다. 꽃바람 일어나는 싱그러운 봄.

 

 

<돌이끼와 부처손>

 

복수꽃이 떠나간 자리엔 어느새 <돌채송화> <석장포> <돌이끼부처손>이 어울려 봄을 재촉하듯 벙긋거리고 있다..

'땡초 monk > ♡갖고싶은 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달맞이꽃 - 우리 산야초 배우기 (유걸/자닮사)  (0) 2007.06.21
[스크랩] 야생화 (희귀종)  (0) 2007.06.19
[스크랩] 야생화백과  (0) 2007.01.29
새우란  (0) 2007.01.29
타래난초  (0) 2007.01.19